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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독서

당당하게 실망시키기

[ Reading a Book ]

World In Camera



  저는 만화를 좋아합니다. 어릴적엔 폭력성이 강한 일본 만화를 많이 본다고 부모님께 혼난 적도 많아요. 그래도 만화의 유혹은 끊지 못했고, 여전히 만화를 즐겨보는 편입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독서 권장을 위해 만화부터 읽어라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중에서 청소년 권장 독서로 만화들도 많이 선정되고 있어요. 이번에 읽은 책은 청소년 진로개발을 위한 만화이지만, 성인이 읽어도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터키 텔레비전의 하나뿐인 채널은 국영방송이었다. 텔레비전을 틀면 주로 장군과 군인들이 나왔다. 밸리 댄서들은 물론, 위대한 터키 국민에 대한 곡을 제외하면 그 어떤 노래도 금지되었다. 군에 반하는 기사를 쓰는 신문사는 일시 폐간을 당했다. 좌익사상에 대해 하나라도 언급한 책과 잡지는 출판이 금지되었다. 경찰들은 수색영장 없이 어느 때고 아무집이나 쳐들어 갈 수 잇었다. 만약 금지된 물건이 발견되면, 누구든 집에서 체포되어 감금과 고문을 당했다. (P 51)


  낯설지 않은 시대상황이에요. 다만 국가는 한국이 아닌 터키라는 것이었죠. 군부 독재의 공포정치가 이어졌던 이 시기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가 이념의 대립으로 군사정치가 심했던 시기였어요. 이 시대에 유년기를 보낸 저자는 그 속에서 세상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과 자신이 바라는 이상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고 방황을 합니다.


▲글만 보면 정말 끔찍한 시대적 상황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최악인건, 내가 어떻게든 공부를 해 보겠다며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냈다는 사실이다.

- 그런데 내가 원하는게 뭘까?

- 난 인생의 목표가 없어

- 결국 칸막이 생활 신세가 되느니 차라리 죽을래

- 학교를 그만두면 어떻게 될까

- 다시 입학시험을 쳐서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어

(P 155)


  터키 사회상과 역사는 잘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렴풋이 당시 터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어요. 문제는 몇십년이 전의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죠.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해 목적 없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시절.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자신. 저 역시 이와 비슷한 학창시절을 겪었기에 남일 같지 않더라구요. 가장 슬픈 것은 직장생활을 하는 현재도 비슷한 고민을 할 때가 있어요...


▲ 끊임 없는 주입식 교육과 시대적 상황을 볼 수 있어요



책 제목인 <당당하게 실망시키기>와는 달리 책주인공이자 저자인 오즈게는 주변을 당당히 실망시키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랑하는 언니처럼 되길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어린 오즈게의 모습이 끊임 없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과 달리 뚜렷한 결과를 만들지 못해 방황하고 때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는지 등 끊임 없이 고민에 빠지는 오즈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 비록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뭔가를 배워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책의 마지막장을 읽을 때 까지 오즈게의 삶에서 오즈게가 특별히 뭔가를 이뤘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즈게의 삶은 실패한 삶일까요? 아뇨, 누구도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책을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책속에서 매순간 열심히 살고, 자신의 인생에 충실했던 오즈게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요. 이것이 진짜 저자가 전하려 했던 의도가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죠.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진학해서도 뚜렷하게 이렇다할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오즈게의 모습은 결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의 행동에서 깨달은 오즈게의 모습과 생각을 저도 함께 정리해봅니다. 진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좋은 결과가 없으면 노력했던 과정은 모두 허사이고, 쓸모 없는 삶을 살았는 것인지를... 그렇지 않다면 하루하루 삶에 최선을 다한 자신의 삶은 격려받고 축복 받은 삶인지를요.



쿠토 선장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학공부를 통해 배우는 법을 배웠다. 난 뭐든 원하는 건 제법 잘 배워냈다. 설령 실패할지라도 삶은 끊임없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린 잠시 이곳에서 머무는거야. 누구나 죽어. 난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했다. 설령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라해도. 자, 물살을 거슬러 헤엄을 치자. 어때, 당당하게 실망시킬 용기가 생겼니? (P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