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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Field Trip ]/▷한국여행 [Korea ]

경상북도안동, 안동하회마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20대라며,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던 그때.

하루하루 여행한다는 기분으로 밖을 나가고, 시간만 되면 밖을 멀리 돌아다녔던 나의 20대.

그중 20세에서 만25세까지만 누릴 수 있다는 "내일로 여행"

이미 5년이 훌쩍 넘어버린 시간이지만 그때의 기억과 느낌을 떠 올리며 사진과 기억을 이제야 정리한다.


 내일로 (2010.08.29 - 09.02)

 2015.08.29 안동 하회마을










일주일간 마음껏 무궁화와 새마을호 입석으로 탈 수 있는 기차 티켓, 내일로.

그리고 나의 첫 여행지는 경상북도 안동으로 택했다.

"안동찜닭"과 "하회탈"의 본고장, 안동.

매번 TV로만 보던 하회탈과, 프렌차이즈식으로만 먹던 안동찜닭을

이번엔 직접 보고 즐기자는 기분으로 동대구에서 안동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6시20분 아침 기차를 타고 2시간정도를 달려 도착한 안동역.

대학생들의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가 그런가,

안동역에 내리는 여행객은 나 하나 뿐, 어디에도 여행객으로 보이는 이는 없었다.

안동역에서 하회마을까지 가려면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40~50분 가량을 이동해야 했다.


여행 당시, 46번 버스 한 대만 하회마을로 갔었는데, 이 버스도 한시간에 한 대 뿐이였다.

만약 놓치게 된다면 한신간을 역에서 기다려야 했기에 부지런히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안동역에서 하회마을로 이동하는 동안은 딱히 기억에 남는 풍경이 없었다.

그냥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가는 느낌이라 그랬을까?

새벽에 일찍 일어났기에 곧 버스에서 잠들었고, 어느새 버스는 하회마을에 도착했다.


하회마을 입구에 정차한 버스는 여행객들을 내려주곤 이내 마을을 떠나버렸다.

마을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도 하루에 몇 대 없다고 하니 나갈때도 시간을 잘 맞춰 나가야 할듯 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해야 하는 마을.

내가 여행할 당시 개인은 2000원이었는데, 지금은 3000원으로 인상되었다고 한다.

마을까지 들어가는 버스도 운행 되는데 걸어서도 5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릴 굳이 버스를 타기 보단

천천히 걸으며 마을 주변을 구경하기로 했다.





8월의 끝자락임에도 여름은 여름인가 보다.

이제 오전 10시가 되었는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었다.

정류장에서 마을 입구까지의 길 옆으로 아직 익지 않은 벼와 연꽃잎이 마을 방문객을 맞아줬다.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살아온 동성마을, 외가와 함께 초가가 오래도록 보존 된 마을. 조선시대의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마을

그리고 내가 방문하기 1년 전인 2010년 7월31일 유네스코로 지정된 마을인 안동 하회마을



아직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방문객은 그렇게 많지 않아 한적한 마을.

혹시나 마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돌담과 초가 지붕 밑을 천천히 둘러봤다.

처마에 메달린 망태기와 하회탈이 하회마을에 시골의 향을 더욱 더해주는 듯 했다.







한참을 걷다 멈춘 한 기와집

[ 충효당 ]

비록 생가는 아니지만, 류성룡의 제자와 손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충효당

그의 나라사랑과 부모에 대한 효를 잠깐이나마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건물 내에 들어가니 글을 읽고 있는 류성룡 선생의 마네킹이 보였고, 그의 붓글씨와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충효당을 나와 다시 마을을 둘러봤다.

할머니댁이 시골이라서 어릴적 할머니댁에 놀러가면 기와집과 초가집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마을 옆으로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집들도 모두 재건축이 되어 이제 할머니댁에 가도 기와집만 몇채 남았을 뿐이다.

전국 곳곳에 한옥 마을이 남아 우리의 옛모습을 남기고 있고,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이제 옛집을 보는 것은 그만큼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곳을 나가면 금방 한옥은 잊어버리고 아파트와 현대식 건물에 익숙해지겠지만

잠깐만이라도 예전의 풍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한 안동 하회마을.






마을을 벗어나 강가에 이르자 강건너편으로 웅장한 부용대가 보였다.